일상다반사

단상 - 2017년 11월 29일 모의고사

알 수 없는 사용자 2017. 11. 29. 15:07

어느 모의고사 감독을 하는 날이었다. 늘상 그렇듯이 '모의'고사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그 나약함과 부족함은 학생들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었나보다.

1교시 언어영역시간에 자신들이 읽을 수 있는 우리말이 어디까지인가 둘러본 뒤에, 학생들은 하나둘씩 그들만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기 위해 자신들만의 세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자필 확인 문구인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을 찾아 갔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들은 감독교사의 확인을 받았고 무사히 원래 그들이 있어야 할 장소인 교실로 돌아왔다.

쉬는 시간과 예비종은 그들에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청춘의 배고픔을 잊기 위해 그들은 그렇게 열심히 매점을 들락거렸고, 우정을 돈독히 하는 그 한마디를 뱉으며 느긋하게 교실로 향했다. "야 시× 나도 한입만" "아 되따 좀 꺼지라 ㅋ" (그러면서도 본인의 배고픔 따위는 잠시 미뤄둔채 욕을 한 친구에게 한입을 냉큼 내어주는 모습은 마치 천상에서나 볼 수 있는 아가페 적인 사랑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다시 시작한 2교시는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그들이 읽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대 인도와 중국 그리고 중동 지역을 횡단던 상인들이 유럽까지 전파하여 전세계가 사용하게된 아라비아 숫자 몇개와 그것들을 가지고서 어떻게 새로운 아라비아 숫자로 만들어야하는지 물어보는 질문들 밖에 없었다.


그들은 패배했다. 마치 전쟁터에서 총에 맞은 군인들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끝까지 살아남아 그 질문들에게 승리를 거두고자 하는 학생들이 몇몇 있었다. 때론 정면 돌파가 힘들었는지 몇몇 문제들이 덫에 걸리길 바라며 여기저기 검은 지뢰를 놓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문제라는 적들과 만났을때 답안지에 지뢰를 '찍어'둠으로써 완전하진 못할지라도 일부의 승리를 거두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전쟁기술인가. 그 지뢰에 안걸리면 어떠하랴. 그 다음에도 또 지뢰를 '찍어'두어 언젠가는 걸리겠지 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는가.

어떤 학생은 일자로 같은 줄을 따라 지뢰를 찍는가 하면, 또 어떤 학생은 이리저리 지그재그로 찍기도 한다. 또 때로는 나중에 전쟁의 승리후 얻게될 '부'를 생각하며 다이아몬드 모양의 지뢰를 설치한다던가, 시험 출제자와 채점자에게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하트 모양의 지뢰를 설치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 학생이 지뢰를 설치하다 말고 쓰러졌다. 왜 그런가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선택형이라는 적과는 싸울 준비가 되었으나, 단답형의 적은 도대체 어디서 올지 몰라 지뢰를 '찍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아!! 통재로다!!! 이미 지뢰라는 것은 적이 올 듯한 어느 공간에 설치하는 것인데 올지 안올지 몰라 설치를 못하겠다니!!!! 결국 이 학생은 본인의 손에 지뢰를 매설 할 충분한 화약과 도화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곳에도 지뢰를 설치 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22번~30번까지의 9문제의 적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어 완전한 패배를 맛보게 될것이다.

당신에게 '컴싸'라는 무기가 있다면, 절대 물러서지 마라. 비록 당신이 패배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다시한번 시도해라. 언젠가 그것이 당신에게 작은 승리를 안겨 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더 큰 전쟁에서 승리 할 수 있는 중요한 거점이 될 지도 모른다.